I am going to be retired from SK securities soon. so I want my clients to say "Thank you for being my clients for a long time".

I am going to be retired from SK securities soon. so I want my clients to say "Thank you for being my clients for a long time".

11월 30일 SK증권을 퇴직합니다. 2007년 겨울부터 2020년 겨울까지 14년간 함께해온 고객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11월 30일자로 SK증권을 퇴직합니다. 2007년 겨울부터 2020년 현재까지 14년간 동거동락해온 고객분들에게 정말 감사드리며, 마치 아름다운 흑백사진처럼 많은 추억들이 떠오르네요.

< At Kyungpoda beach on November 30, 2007. I quit the life of a full-time derivatives trader for 3 years >


2007년 겨울 투자상담사로 SK증권 방배프라임 지점에 입사해서 어느덧 14년이 흘렀습니다. 저는 2002년 가을에 본업인 부동산업이 잘 안되서, 대안을 찾다가 주식에 입문했지만, 2003년 봄에 리타워텍이라는 종목으로 깡통을 차고 짧은 전업을 마감했습니다.

그 이후 절치부심하다 2003년 여름에 당시 CJ투자증권에서 예스트레이더로 선물 시스템트레이딩을 하면서 파생판에 들어왔고, 2005년부터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전문가 활동과 전업 트레이더 생활을 병했하면서 약 3년간 선물,옵션,주식 전업투자자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2007년 유래없는 강세장에 마침 옵션매수전용계좌가 생기면서 번번히 풋매수 베팅만 하다 다시 깡통을 차고 헤매고 있을 쯤, 우연히 기회로 SK증권 방배프라임 지점에 투자상담사로 들어와서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가 있던 시절부터 줄곧 파생 영업만 해왔습니다.

< With My club members in 2005. I made a stock investment Club in Etomato at that time>


운좋게도 당시에 팍스넷 선물옵션 카페에서 협의수수료 영업이 잘 되서 금방 브로커로써 자리를 잡았고, 2009년부터는 나름 Heavy Trader로 파생매매도 열심히 했지만 일시적으로는 수익을 많이 내는것 같았는데 누적 결과는 신통치 않았습니다.

<At my room in Bangbae branch of SK securities in November 2010>





2009년부터 2011년 사이 한창 Derivatives Heavy trader로 매매할 때는, 하루에도 1억씩 손익이 오고갔고, 2011년에는 매매스트레스가 쌓이다보니 매일 장 끝나면 100만원씩 인출해서 그 돈을 다 쓰고 밤늦게 집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러나 매일 백만원씩 써도 스트레스가 별로 풀리지 않았고, 처음에야 신나서 썼지만 얼마안가 백만원은 커녕 십만원도 못 쓰고 집에 돌아오기 일쑤였다. 그래서 2012년부터는 주말마다 여행을 다니는 것으로 매매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I have spent about 1000 dollars a day at that time of 2011, But The trading stress didn't decrease>



<Me in Suit Room of Jeju Shilla hotel  in 2011>



특히 2011년 여름에 유로존 위기 때 한달에 선물지수 100포인트 하락할 땐 양매도탑쌓기하다가 자산이 반토막 나기도 했다. (당시에는 증권사 직원도 본인명의로 파생매매를 할 수 있었음)

<Derivatives Trading Competition hosted by SK securities in 2011>



< I was given some whisky from my clients after the trading competition >




그래도 2012년까지는 국내파생 거래자도 많아서 그럭저럭 영업이 잘 되었습니다. 그러나 2013년 이후부터 국내파생 제도 강화( 옵션 승수제, 개인 투자자 요건 강화 등)와 지루한 횡보장이 지속되면서 많은 고객분들이 해외파생으로 빠져나가면서 점차 국내파생은 활기를 잃어갔습니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파생인의쉼터 카페는 그 어떤 곳보다 북적거리고 활기가 있는 공간이었고, 모임을 한번 하면 어떤 형태의 모임이건 최소 10명에서 최대 50명까지 참석하는 등 매월 스터디와 만기 모임 등 다양한 형식의 오프라인 행사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2013년부터는 만기모임을 해도 서너명이 모이는게 고작이고, 카페 역시 신규 회원이 늘지않고, 새로운 글이 올라오지 않는 등 정체된 모습으로 2년간을 보냈습니다.

< A luxury wine party hosted by 파생인의쉼터 at Inter-Continental Hotel in Samsung-dong in 2011>

< A regular Derivatives Study hosted by 파생인의쉼터 In Busan in 2012>


2015년 무렵에는 저 역시 다른 증권사로 이직을 준비했었고, 당시에 하나대투나 유안타 등에서 아주 좋은 조건으로 이적료까지 준다고 했으나 여러가지 이유로 망설이다 끝내 현재까지 SK증권에 남아있게 되었네요.

그 이유는 역시 '조강지처'와 같은 게 아니었을까 싶네요. 고객분들이 단순히 영업의 대상이 아니라 같은 파생 트레이더로써 느껴지다보니 어려운 시기를 동거동락한 트레이더로써의 우정이 더 많이 쌓인게 아닐까 싶네요. 또한 제가 막 깡통을 차고 경제적으로 어렵고 힘들 때 이제 막 영업을 할 때 저를 도와준 고객분들인데, 제가 좀 형편이 나아졌다고 외면하면 도리가 아니겠죠. 결국 지금까지 SK증권 남은건 고객분들과의 의리 하나 때문이고, 그 외의 이유는 없습니다.

< API study with my clients at Bangbae branch of SK securities in 2014>


파생에서건 인생에서건 격정의 시기는 이미 지났네요. 

내년이면 저도 50살이 되니 제 인생도 여름을 지나 가을로 접었들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삶을 응축하고 압축해나가는 시기가 되겠죠. 30대 중반에 SK증권에 들어와서 50대를 코 앞에 두고 SK증권을 떠납니다.

딱히 어떤 감정이 있다기 보다는 그냥 무덤덤합니다. 아쉬움도 있지만, 그건 미련이 아니라 남은 고객분들에게 대한 미안함입니다. 아무튼 SK증권에 제가 고객분들에게 해 줄 수 있는건 여기까지로 하겠습니다.

퇴직후 무엇을 하실 건가요? 어떻게 지내실 건가요? 많이들 물어보시는데요. 아시겠지만, 저는 2016년 여름에 몸이 갑자기 안좋아지면서 퇴직을 고민했고,2017년부터 조기퇴직을 결심하고 퇴직 이후 여러가지 Plans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언제든지 퇴직을 하면 해야겠다는 것들을 이미 몇가지 마련한 상태였고, 이번에 그 중 하나를 차근차근 진행중에 있습니다. 석촌호수가 보이는 풍경좋은 곳에 사무실도 마련했고,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입니다.

앞으로 한 5년 정도 2025년까지 계획했던 일과 하고 싶은 일을 해보고, 그게 정말 잘 된다면그 때는 완전히 파생판에서 떠날 생각입니다.

< I have set up my office for a new business in Jamsin near Seckchon lake in 2020>


2016년 여름에 제가 갑자기 몸이 많이 아팠습니다. 병의 원인을 찾기가 어려웠는데, 오랜 파생매매로 인한 스트레스가 아닐까 하는 추측. 자율신경이 교란되어 음식을 못 삼키고, 수면 중 간질 증세가 하루에도 몇번이나 발생하고, 서 있다가도 갑자기 죽을 듯 쓰러지고 그 때는 정말 이러다 죽는거 아닌가 싶어서. 파생이고 주식이고 다 때려치고 시장에서 벗어나 있었습니다. 양양에 조그만 집을 얻어놓고 회사에 특별한 일이 있지 않으면 거의 양양에 있곤 했습니다. 과거보다 증세는 많이 호전되었지만 여전히 한번 무너진 신체 면역과 호르몬, 리듬은쉽게 회복되지 않습니다.

그동안 파생 매매로 돈을 많이 까먹을 때도 파생이 밉지 않았는데 파생 매매 스트레스로 병이 생기고 몸이 아프고 숨도 잘 못 쉬고 음식도 못먹고 마음까지 피폐해지니 정말 파생판에서 떠나고 싶더군요

<Checking my body in Gangnam Sevrance Hospital in 2016>


파생이 참 많은 것을 빼앗아 갑니다. 파생을 하는 분들은 자신의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잘 그려지지 않겠지만 저는 파생을 하는 수천명의 고객과 회원분들의 과거 현재 미래를 20년 넘게 봐왔기에 (I have started a full-time derivative trader in 2003)

여러분들의 미래의 모습이 저는 너무나도 선명하게 잘 보입니다. 

이런말 하면 실망할지 모르지만, 파생판에 남아 있을수록 얻는것은 거의 없고 잃는 것만 점점 늘어날 겁니다. 첨에는 돈만 잃지만, 점점 친구를 잃고, 가족을 잃고, 나중에는 건강까지 잃습니다.

특별한 재능이 없는 평범한 99%의 개미는 파생판에 들어와서 다 털리고 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게 현실이고, 이게 여러분들의 미래입니다. 여러분들이 파생판에서 돈을 벌고 성공하려면 정말 엄청난 노력과 남들과는 전혀 다른 비상한 발상으로 시장에 접근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도 지속적인 성공확률이 대단히 낮은 곳이 여기 파생판입니다. 기왕에 파생판에 들어왔으니 한 3년은 시험삼아 매매를 해볼 수 있지만, 한 3년 해보고 성과가 특별하지 않으면 얼른 접고 다른 세계로 가시길 다시한번 강조드립니다.

인생은 정말 짧고 파생판은 너무 우울합니다.

본인의 인생을 이 바닥에서 낭비하지 말고, 훨씬 더 재밌고 더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으시길 바라겠습니다.

<I made my onw Shelter in YangYang in 2017>


글이 길어졌습니다. 대충 마무리를 해야할 장면이네요.

제가 회사를 다니는 동안 책도 몇권 냈습니다. 증권방송도 몇년간 열심히 했습니다. 카페 회원분들과 즐거운 시간 많이 보냈구요. 2019년에는 거의 매월 동남아에 있었습니다



나름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것 같네요. 인생 후반부에 저 역시 새로운 터닝포인트에 서 있습니다. 그동안 SK증권에서 저와 함께 울고 웃었던 수많은 고객분들 감사합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저는 새로운 길을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언제 어떻게 다시 인연이 되서 만날지 모르지만 다시 만날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여유있고 평화롭고 인자한 모습으로 만나고 싶네요. 마지막 인사말을 뭐로 할까 고민을 했는데, 대박나세요! 라고 하고 마무리하려다가 역시 마지막까지 파생판에 경고를 주면서 떠나는게 관리자의 역할인거 같습니다. 

좁고 답답하고 흐릿한 파생판의 매트릭스에 갇혀지내지 마시고, 빨간약을 드시기 바랍니다.파생판을 벗어나서 전혀 다른 세상에서 즐겁게 사시길 바라겠습니다. 

SK증권 고객분들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파생에서건, 주식에서건, 인생에서건 대박나시길 바라겠습니다. 

말과의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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